피로사회,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성일   |    2026.04.06 조회   |   749 작성자   |   총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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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며, 일요일 저녁이면 출근 생각에 한숨을 내쉬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겉으로 보면 특별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고, 누구나 겪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들 중 누구도 억지로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열심히 해보겠다"라는 다짐으로 스스로 선택해 입사했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바로 그 자발성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직장을 '생존'의 공간으로 인식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끝까지 몰아붙인다. 자신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관리하고,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환경보다 먼저 본인을 탓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조직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와 무력감이 서서히 쌓인다. 뚜렷한 '가해자'는 없지만, 모두가 조금씩 지쳐 있는 상태가 된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동한 세계'라고 설명한다. 규율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라는 금지의 언어로 통제했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언어로 사람을 움직인다. 외부의 채찍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가 우리를 몰아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긍정이 어느 순간, 누구보다 나 자신을 향한 폭력으로 바뀐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한병철 학자는 오늘날의 인간 유형을 '성과 주체'라고 부른다. 이전 시대의 인간이 외부 규율과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존재였다면, 성과 주체는 스스로를 경영해 나가는 존재다. 자기 자신을 프로젝트로 만들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따라서 성과 주체 속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러니까 더 해야 한다"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한병철은 우리 사회를 〈피로사회〉에서 잔혹하게 묘사한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 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탄환임이 드러난다" — 〈피로사회〉 中

어쩌면 이 문장은 팀원보다 리더를 더 정확하게 겨냥한 말일지도 모른다. 사실 피로사회의 관점으로 볼 때, 누구보다 피로하고 지친 사람은 팀원보다 리더가 맞다. 가장 많은 프로젝트와 목표를 안고 살며, 팀의 성과, 회사의 기대, 자신의 경력까지 한 몸에 짊어진 채 '조금만 더'를 스스로에게 반복 주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스스로를 향해 쏘고 있는 '탄환'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가장 큰 문제는 리더의 상태가 자연스럽게 팀원들에게 복제된다는 점이다. 리더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팀원들은 "나도 저 정도는 해야 정상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회사를 생존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리더의 호흡에 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까지 더해진다. 그렇게 조직은 누구의 명령도 없었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갈아 넣는 피로사회로 서서히 변해간다.

피로사회의 세 가지 덫

겉으로는 누구보다 팀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인데, 돌아보면 이상하게 모두가 지쳐 있는 팀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01 자율성 — 말 뒤에 숨은 무한 책임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외부의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 자기 안의 동기와 욕망을 기준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많은 리더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관리해 보자"며 자율과 권한을 확대한다. 겉으로 보면 이상적인 조직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율이 어느 순간 '스스로를 끝없이 밀어붙일 자유'로 바뀌는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회의 자리에서 "힘들면 언제든 말해요"라는 말은 오가지만, 실제로 입을 여는 팀원은 거의 없다. 업무는 그대로 둔 채 책임만 개인에게 귀속되는 구조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 곧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리더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부담을 개인에게 넘기는 순간, 팀은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는 관계로 변해간다.

02 개인화 — 피로를 숨기는 문화

성과사회에서 성패는 철저히 개인의 능력 문제로 환원된다. 일이 잘되면 내 역량 덕분이고, 잘되지 않으면 결국 내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조금만 더 해보자", "우린 원래 이 정도는 해내는 팀"이라는 말을 반복하면, 팀원들은 피로를 드러내기보다 책임을 스스로에게 더 크게 돌리게 된다. 그렇게 피로는 '말해도 되는 상태'가 아니라 '감춰야 할 결함'이 된다.

"이 정도도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의심이 쌓이고, 어느 순간 팀 안에는 외부를 향한 분노 대신 자신을 향한 실망과 자기혐오가 남는다. 철학자 한병철이 말한 피로사회의 우울은 바로 이렇게, 바깥을 향하던 감정이 안으로 방향을 틀 때 형성된다.

03 보상 — 땜질식 힐링 프로그램

요즘 많은 조직이 명상 앱이나 상담 프로그램, 복지 포인트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 겉으로 보면 구성원을 배려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 둔 채 "회복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구조가 유지될 때 문제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이만큼 지원해 주는데도 힘든 건 결국 개인이 마음을 관리하지 못해서"라는 시선을 갖기 시작하면, 힐링 프로그램은 돌봄이 아니라 또 다른 압박이 된다.

구조는 변하지 않은 채 마음가짐만 더 단단히 하라고 요구받는 팀은 점점 말이 줄어든다. 피로는 더 이상 함께 조정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각자가 조용히 해결해야 할 개인적 문제로 남게 된다.

팀을 지키는 리더의 태도

성과사회에서 팀을 지키려면, 리더는 역설적으로 '긍정의 말'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부정의 언어'를 다시 꺼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은 냉소나 포기가 아니다. 더 이상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 그어주는 일이다.

01 하지 않을 일의 목록을 만드는 리더

성과사회는 "Yes, we can"이라는 슬로건으로 사람을 몰아붙인다. 문제는 이 말이 어느 순간 "그래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라는 압박으로 뒤바뀐다는 점이다. 그래서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팀 안에서 '하지 않을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보고서, 아무도 읽지 않는 장문의 메일, 형식만 남은 회의처럼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일들을 먼저 정리해 주는 것이다. '성과 주체는 자신이 주인이면서 동시에 노예'라는 한병철의 논지는,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는 리더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상사가 되어버리는 모습을 정확히 겨냥한다. 리더가 "안 할 일부터 정리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순간, 팀원은 비로소 이런 메시지를 듣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갈아 넣지 않고도,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02 피로의 지형을 먼저 묻는 사람

한병철은 인간의 삶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만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피로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리더는 누구보다 수치를 잘 읽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수치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이번 매출이 얼마였는가"보다 먼저 "이 과정에서 가장 지쳤던 순간은 언제였는가"를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를 낸 사람에게 축하를 건네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소모된 에너지와 시간, 감정과 관계를 함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런 시간이 쌓일수록 팀의 피로는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함께 조율해야 할 팀워크로 드러난다.

03 휴식을 원칙으로 하는 리더

우리가 속한 조직 문화에서 더 두려운 것은 단순히 쉬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쉬어도 된다"는 말을 누구도 먼저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리더는 휴식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회의 없는 날을 공식적으로 정하고 실제로 회의를 열지 않는 것, 장기 프로젝트가 끝난 뒤 성과 발표보다 먼저 회복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실천이 필요하다.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일정을 조금 줄이고 다시 조정해 봅시다" 이런 한마디가 리더의 습관이 되는 순간, 팀은 비로소 "끝까지 태워지고 버려지는 팀"이 아니라 "조정할 수 있는 팀"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쉬는 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지속을 위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리더가 먼저 몸으로 보여줄 때, 휴식은 특혜가 아니라 팀의 기본 원칙이 된다.

피로를 숨기는 팀에서, 피로를 나눌 수 있는 팀으로

"우리는 너무 많이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피로사회〉의 메시지를 오늘의 조직에 적용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래 버틸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함께 무너지는 팀이 되었다"

좋은 리더십은 팀을 더 빨리 달리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팀이 어디까지 달려야 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 경계선을 함께 그어주는 감각이다. 그래서 리더는 하루가 끝날 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오늘 나는 팀을 더 지치게 만드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게 하는 "안 해도 된다"는 말을 건넸는가.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은 오직 성과 그래프를 위한 선택이었는가, 아니면 앞으로도 이 팀이 함께 버틸 수 있는 리듬을 위한 선택이었는가.

피로사회 안에서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번아웃을 완전히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팀이 소진되기 전에 서로의 피로를 알아차리고, 경계를 조정하고, 함께 멈출 수 있는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때 리더는 단순히 성과를 끌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리듬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한병철이 분석한 피로사회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버티는 팀'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팀'이 만들어진다.


본 글은 미디어스트리트의 품질경영 2026년 4월호에서 발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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