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추가할까요?”, “무광 베이지 도어로 바꾸시겠어요?”, “이 선반은 추가 조립 가능합니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을 단순히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한다. 기본형 위에 나만의 취향과 기능을 덧입히는 이 소비 방식은 이제 단순한 옵션 선택을 넘어 ‘토핑경제(Topping Economy)’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토핑경제는 소비 트렌드를 넘어, 소비자가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사진=셔터스톡]
토핑경제란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본형에 소비자가 다양한 선택지를 추가해 맞춤형으로 소비하는 경향을 말한다. 식음료부터 패션, 가전, 가구, 모빌리티, 전자기기까지 이 흐름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 중이며, 특히 자기 표현에 민감한 MZ세대의 소비 패턴을 정밀하게 반영한다.
“이건 내가 고른 조합이야.” 이 한마디가 소비자에게 구매 이유이자 자부심이 되는 시대다. 더 이상 표준화된 대량생산만으론 고객을 설득할 수 없다.
선택할 자유, 나만의 디자인 과정
토핑경제의 대표 주자는 단연 LG전자의 ‘오브제컬렉션’이다. 냉장고, 김치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전통적인 가전 제품들이 유광·무광, 유리·금속, 베이지·차콜 등 수십 가지 컬러 옵션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냉동고, 김치냉장고를 필요에 따라 붙이거나 분리할 수 있는 모듈형 설계는 ‘가전의 조립화’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주어진 제품을 수용하지 않는다. 가전을 ‘인테리어의 일부’로 바라보며 직접 큐레이팅한다.
가구 분야에서는 이케아(IKEA)가 토핑경제를 선도한다. 수납장 ‘BESTÅ’, 선반 ‘KALLAX’, 옷장 ‘PLATSA’ 등은 가로·세로 크기, 도어 스타일, 바퀴 부착 여부 등 모든 요소가 사용자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
이케아는 조립을 서비스 대신 경험으로 전환시켰다. 소비자는 온라인 시뮬레이터를 통해 조합을 구성하고, 설명서를 읽고, 직접 조립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은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창작자에 가까운 만족감이다.
식음료 업계도 이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 ‘요아정’. 소비자는 기본 아이스크림에 50가지가 넘는 토핑 중 원하는 조합을 골라 오직 나만의 디저트를 만든다. 또한 음료 시장에선 ‘아샷추(아이스티+에스프레소 샷 추가)’, ‘오샷추(오렌지주스+샷 추가)’ 같은 믹스 커스터마이징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 흐름은 단지 맛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 스스로 조합하는 참여형 소비이며, 자신만의 선택이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는 감각은 곧 소비 만족도와 충성도로 이어진다.
패션에서는 컨버스의 커스터마이징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소비자는 운동화에 자수, 패치, 문구 등을 추가하며 단 하나뿐인 제품을 직접 완성한다. 젠틀몬스터는 선글라스에 참(Charm)을 탈부착할 수 있는 ‘선꾸’ 상품을 출시해 액세서리 영역에서도 토핑경제를 구현했다.
뷰티 분야에서는 라카, 어뮤즈, 롬앤 등의 브랜드가 립스틱 색상 조합, 텍스처 커스터마이징을 제공하며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이러한 제품은 단지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고른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선택된다.
현대차 아이오닉 5·6는 색상, 휠, 인테리어 패키지를 고객이 직접 조합할 수 있는 온라인 빌더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이를 통해 차량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설계할 수 있다.
갤럭시 Z 플립은 힌지와 프레임, 커버 색상을 조합할 수 있는 ‘Bespoke Edition’을 통해 스마트폰조차 ‘스타일링’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당신의 제품은 조립 가능한가?
토핑경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량 생산 중심에서 벗어나, ‘소량 다품종·모듈형 설계’로 이동하라.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품을 구성하는 기능 단위를 명확히 나누고, 각 기능별로 독립적으로 설계해 유연하게 조합 가능한 모듈형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이는 기술적 복잡도를 높이지만, 소비자 맞춤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 또한 색상, 소재, 구성 방식 등에 있어 고객의 취향을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생산 시스템 역시 필수다. 공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자동화와 수요 기반 생산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제품의 설계단계부터 물류, 포장, 고객 응대, A/S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개인화’를 고려한 리디자인이 이뤄져야 한다. 포장 박스 하나에도 ‘내가 주문한 조합’임을 느낄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며, A/S 역시 모듈 단위로 빠르게 교체 가능하도록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는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의 생존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는 문제다. 또한 이 트렌드는 단순히 ‘선택지를 늘리자’는 접근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진정한 토핑경제의 핵심은 ‘소비자가 진심으로 선택하고 싶어질 만한’ 조합의 가치와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이는 제품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생산 관리자, 마케터가 함께 고민하고 움직여야 하는 전사적 전략 변화다. 소비자는 더는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세상을 설계하고,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며, 경험을 디자인한다.
토핑경제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를 넘어, 모든 제조와 디자인, 브랜딩 철학을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제는 고객이 고른다는 것을 넘어서, 고객이 함께 만든다는 감각을 줄 수 있는 브랜드만이 선택받는 시대다.
따라서 조립의 기술을 넘어서 조합의 경험,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감성적 연결고리를 설계해야 한다. ‘토핑’은 더 이상 부가적 요소가 아니다. 그건 소비자가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취향을 투영하는 장치이자, 진정한 가치소비의 표현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제품은,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다. 토핑경제는 지금,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제품은, 나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나요?”
진주영 기자 jjy@ksam.co.kr
본 글은 미디어스트리트의 품질 그리고 창의 2025년 7월호에서 발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