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DX) 시대, 해답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구성원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세대 간 다름을 연결하는 퍼실리테이터형 리더가 있다.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자율적 참여와 협업을 이끌어 내며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변화의 촉진자다.
제조 현장 리더는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세대 간 소통 단절을 새로운 기회로 이끌어야 한다. [사진=셔터스톡]
최근 강의와 컨설팅을 위해서 여러 기업을 방문하면 항상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소통의 어려움과 제조 현장의 DX 전환에 대한 것이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베이비부머·X세대 4~50대 선배와 MZ세대 2~30대 후배 간의 소통이 어려워 현장의 일하는 문화가 예전 같지 않으며, 서로 협력하여 문제 해결을 추진하고 성과를 향상시키는 활동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위에 인공지능의 거센 파도가 덮쳐 현장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DX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자체가 나쁜 현상이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이 점점 중국에 밀려 약화되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에서 언급한 변화의 바람은 오히려 분위기를 반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변화의 바람을 잘 넘어서면 우리 제조 현장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소통과 DX 전환
우리 제조 현장이 변화의 바람을 잘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여러 고객사와 미팅을 해보면 어떤 회사는 최신 기술의 도입을 중심에 놓고 추진하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회사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중심에 놓고 사람이 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는(또는 사람의 실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어느 한쪽만이 맞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시행착오를 줄이며 건강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후자에 가깝다고 하겠다.
즉, 우리의 제조 현장이 건강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변화의 수용 과정을 자세히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의 핵심은 현장 리더에게 있을 것이다. 현장 리더의 다양한 역할 중 링커십(Linker-Ship)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는 현장 리더가 중간 관리자로서 위아래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며, 단순히 기술적 지식과 생산 관리 능력만을 갖추는 것을 넘어, 의사소통 및 조율 능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제조 현장에서는 상하 간의 위계와 부서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연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현장 리더가 효과적인 링커십을 발휘할 때, 변화의 과정에서 회사의 혁신 전략과 활동 과제는 현장에서 명확히 이해되고 실행될 수 있다. 동시에 현장의 귀중한 통찰과 문제점은 경영진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혁신을 위한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양방향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변화에 능동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제조 현장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제조 현장 변화의 플랫폼, 분임조
분임조 활동은 오랫동안 우리 제조 현장에서 추진되어 왔으며 여전히 많은 기업이 현장 개선 활동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추진 중에 있다. 어떤 이는 분임조 활동이 과거 시대의 활동이고 현장의 단순한 개선 활동 도구로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단순한 개선 활동의 도구를 넘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직 문화 혁신의 플랫폼으로 새롭게 바라본다면 좋겠다.
현장 리더가 링커십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기적인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다. 특히, 현장 구성원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또 전파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0년 전후 기업들의 혁신 활동이 현장 중심에서 엔지니어 중심으로 전환되면서(6시그마 활동 등의 영향으로)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분임조는 제조 현장의 소통과 DX 추진을 성공적으로 이끌 훌륭한 구심점으로 재평가되어야 하겠다.
분임조 활동은 단순히 현장에서 개선 과제를 추진해 원가를 절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필자 확인 결과, 건강한 기업 문화를 가진 회사들을 살펴보면 대기업, 중소기업 구분할 것 없이 모두 현장 개선 활동이 활발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분임조 활동 참여율이 100%에 가까우며, 개인 제안 참여율도 매우 높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분임조 활동이 현장의 자율성과 협업 문화를 촉진하여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변화와 혁신에 대한 직원들의 주인 의식을 높이는 효과가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분임조 활동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문제 해결 도구를 넘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인간성 존중을 통해 조직 내 학습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지속적인 교육 훈련과 다함께 참여하는 개선 과정을 통해 개개인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리더를 중심으로 공식적·비공식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변화의 시기에 대응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오늘날 분임조 활동의 중요한 의미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이 분임조 활동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운영하거나 활동 자체를 중단한 경우를 보게 된다.
가장 큰 이유로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이 꼽힌다. 베이비부머·X세대 선배들과 MZ세대 후배들 간의 인식의 차이는 소통의 큰 장벽이 된 지 오래다. 선배 세대는 “왜 요즘 신입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느냐”고 불만인 반면, MZ세대는 “윗세대는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역으로 불만이다. 그러다 보니 분임조 회의에서 서로 터놓고 의견을 내기가 어렵고, 팀 내 신뢰 형성도 거리가 멀다.
또 다른 이유는 분임조 활동이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하거나 추가 업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 시간에 쫓기는 환경에서는 개선 모임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하고, 실적 압박 속에 단기 업무 외의 활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한다. 또한 개선안을 내도 경영진이 제대로 지원하지 않거나 성과에 대한 피드백·보상이 부족하면 분임조 활동에 흥미를 가지기 어렵다.
개인주의+관계주의=건강한 제조 현장
우리의 과거 조직 문화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곤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문화가 남아 있기도 하다. 과거에 그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회사에 입사하면 정년까지 함께 간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고, 따라서 회사의 발전이 개인의 이익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MF 이후에 그러한 공식은 깨졌다. 퇴직자는 낙오자라는 오명도 사라진지 오래다. 능력이 있으면 언제든지 회사를 옮기는 시대가 되었고, 여러 회사를 옮기며 몸값을 올리는 것이 능력의 상징인 사회가 되었다.
MZ세대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폄하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개인주의는 아무런 죄가 없다. 이기주의가 문제인 것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완전히 다르다. 건강한 개인주의는 나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게 인정한다.
과거 조직 문화에 익숙한 선배들은 MZ의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라고 많이 오해하는 것 같다. 또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럼 개인만 중요하고 회사는 중요하지 않나요? 회사가 먼저 살아야 직원도 있는 것이지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조직을 위하는 것과 우리를 위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은 관계주의 성향이 강하고, 일본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회사 회식에 참석하는 이유가 ‘동료들과 관계를 쌓고 싶어서’인가? ‘안 가면 찍힌다’인가? 한국은 전자에 가깝고, 일본은 후자에 가깝다. 퇴근 시간 무렵 고객으로부터 긴급한 요청이 있을 때,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급한 일이 있으니 서로 도와서 해결하자’인가? ‘야근은 당연하다, 회사를 위해서’인가?
제조 현장이 건강해지려면 개인주의와 관계주의가 모두 잘 자리 잡아야 한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MZ세대를 성급하게 비난하기 전에 집단주의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다.
2023년 4월, 전경련이 MZ세대 827명에게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7.9%가 소통형 리더십을 원한다고 답했다. 반면 카리스마형은 13.9%, 업무 처리 시 자율성을 부여하는 위임형을 선호한다는 답변도 8.2%에 불과했다.
설문에서 알 수 있듯이 MZ세대도 선배들과 좋은 관계로 소통하기를 원한다.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에서 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 따라서 선배들이 먼저 손을 내밀면 좋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소통도 위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그 흐름을 만들 방법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분임조’다.
건강한 길잡이, 퍼실리테이터형 리더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해보자. 변화의 시대에 제조 현장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력 역량 강화, 조직 문화 개선, 협업체계 구축 등이 뒷받침될 때 기술이 효과적으로 현장에 안착할 수 있다. 제조 현장 DX 변화의 중심은 사람이며, 기술은 이를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분임조 활동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한데로 모으고 구심점 역할을 할 훌륭한 플랫폼이다. 그 과정은 지시와 통제가 아니라 구성원의 잠재력을 믿고 스스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하겠다. 현장 리더는 퍼실리테이터로서 그 플랫폼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퍼실리테이션이란 그룹 구성원들이 효과적인 기법과 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돕는 활동을 의미한다.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는 것을 넘어, 구성원이 스스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지원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전 기고에서 코칭형 리더십을 이야기했는데, 퍼실리테이터가 가져야 할 핵심 역량이 코치의 핵심 역량을 포함하고 있어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그동안 필자가 만나 본 분임조 활동을 성공으로 이끈 현장 리더들은 한결같이 소통과 협업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었다.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 리더 한 사람 한 사람이 퍼실리테이터가 되어 팀의 시너지를 이끌어 내면 우리의 제조 현장은 1+1이 2를 넘어 3도 되고 10도 되는 행복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장의 리더들이 권위주의적 관리자의 모습이 아니라 구성원의 성장을 돕고 변화와 혁신을 촉진하는 퍼실리테이터로 거듭날 때, 비로소 조직은 세대와 계층을 넘어 하나로 뭉쳐 지속적인 개선과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링크십이 성공적으로 발휘되는 것을 뜻하며, 단순히 대화를 촉진하는 것을 넘어 각 세대의 내재된 가치관을 드러내고,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설계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런 변화가 현실이 될 때, 세대 간의 다름은 강점이 되고, 분임조의 다양성은 장점이 되며, DX 열풍은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을 도약시키는 반전의 기회가 될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주장이 단순한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다음 호에서는 이를 현장에서 실현한 사례와 퍼실리테이션에 대하여 살펴보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하석광 한국표준협회 품질경영본부 수석전문위원
경영학 박사, 한국코치협회인증 프로코치
skha@ksa.or.kr
본 글은 미디어스트리트의 품질경영 2025년 7월호에서 발췌되었습니다.